버리고 싶은 것희망편지 287호   발송일: 2022.02.17

글: 김철우 | 수필가

또 몸에 이상 증세가 생겼다. 얼마 전부터 뻐근한 증세만 보이더니 며칠 전부터는 제법 부기가 올라 화가 잔뜩 난 듯 보였다. 더구나 몇 해 전 암 수술을 받았던 부위와 가까워 걱정의 무게를 더하게 했다. ‘어디서 나도 모르게 부딪혔을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까?’라고 위안하며 보내길 며칠. 그러나 기대와 다르게 상황은 더 나빠지고 말았다. 부기는 더 심해졌으며, 뻐근하던 증세를 넘어 압통까지 생겼다. 심리적인 영향 때문인지 암 수술을 받았던 곳에서는 간혹 따끔거리거나 당기는 듯한 느낌도 생겼다.

“병원에 가야겠네.”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을 들었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남편만 바라보는 집사람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있었다.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를 제외하고 대학병원의 거의 모든 진료과를 쇼핑하듯 다녔으니 집사람의 반응이 이해되면서도 안쓰럽기도 하다.

1차 병원 진료를 위해 다음 날 아침 동네 병원에 들렀다. 문진과 검사를 마친 의사의 첫마디는 역시 ‘큰 병원’이었다. 3차 병원에 가기 위해 1차 병원의 진료의뢰서가 필요했던 과정이었으므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으나, 의사의 머쓱한 표정이 떠오를 때마다 걱정의 크기가 한 뼘씩 자라고 있었다.

혹여 잊을까 봐 책상 위에 놓아둔 초음파 영상이 담긴 CD와 진료의뢰서. 주인의 심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배가 고프다며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인지, 자신을 빨리 병원에 데려가서 보이라는 것인지 두 번이나 접은 진료의뢰서는 고개를 들어 PC 모니터 한쪽 귀퉁이를 가릴 만큼 기세가 좋다. 시선은 가지만 차마 치우지도 못하고 종합병원 예약일까지 거추장스럽게 일주일을 함께 보냈다.

석달처럼 느껴지는 일주일을 보내고 예약일이 되었다. 젊은 담당의는 친절했지만 당일에 바로 결과를 알 수는 없었다. 혈액채취를 포함하여 몇 가지 검사를 한 후 다음 진료일에 검사 결과를 보는 일정이었다. 그렇게 다시 일주일이 주어졌다. 두 번째 일주일은 반년쯤 되는 듯 길게 느껴졌다. 몸의 부기보다 훨씬 더 커진 걱정은 이미 암癌을 상정常情하고 있었다. ‘이번 병으로 나는 죽게 될까?’, ‘언제 죽게 될까?’, ‘고통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에서 시작하여 가족의 미래와 남겨지는 것들에 대한 고민들이 이어졌다.

유고집은 어찌할 것이며, 추진하던 수필도서관은 또 어찌할 것이며, 도서관에 비치하려고 받았던 수필서적은 또 어찌해야 하나. 집사람 눈치를 보며 이삿짐 한편에 겨우 자리를 마련하곤 했던 내 소중한 물건들은 버려야 하나. 기증해야 하나. 생각은 토끼처럼 몇 초 만에 다른 생각으로, 또 다른 생각으로 뛰어다녔다. 종잡을 수 없이 날뛰는 토끼의 뒤만 쫓다가 날이 밝아왔다.

낮에는 책상 의자에 앉아 생각의 숲을 헤맸다. 나는 의자와 함께 바닥으로 조용히 가라앉았고 1층을 지나 지하까지 함몰되어가면서도 온통 버려야 할 것과 조용히 잊히는 방법만 생각했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집에 있지 말고 나가라며 등을 떠미는 집사람 덕분에 술값이나 내자며 나갔던 동창 모임에서도 무슨 일이 있느냐며 친구들은 안색을 살폈다. ‘걱정은 무슨….’이란 대답의 절반은 다시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나머지는 녀석들의 귀에 닿기도 전에 소음 속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어디에 있든 온통 버려야 할 것 생각뿐이었다.

검사 결과를 보는 날 아침, 따라나서겠다는 집사람을 설득해 집에서 기다리게 하고 혼자 길을 나섰다. 혼자 남은 집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며 기다릴지 뻔히 아는 터였지만 평상시와 같이 병원에는 혼자 가고 싶었다.

고민과 걱정의 범벅이었던 지난 일주일이 무색하리만큼 검사 결과는 단순했다. 암에 의한 전이는 아니다. 염증만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더 지켜보자. 암에 의한 전이가 아니라는 데 우선 안심했다. 아무것도 손에 잡지 못하고 있을 집사람에게 전화로 소식을 전했다. 긴 한숨 소리를 듣자마자 거짓말처럼 허기가 몰려왔다.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 몇 주일 동안 미뤄왔던 일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없이 보낸 날들이었다. 장단기 목표를 위해 제안서도 준비하고, 마침 공모전 공고가 눈에 띄어 서둘러 응모도 했다. 지난 한 달을 돌아보니 검사 결과를 들은 날을 기준으로 확연히 달라진 내가 보였다. 검사 결과 전에는 버릴 것만 생각하게 되더니 그 이후에는 얻을 것만 생각하지 않는가. 어디서 욕심이 생겨난 것일까. 삶이 곧 욕심일까? 욕심이 삶일까?

쉬이 잊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특히 버려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삶이 조금 더 단순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욕심을 조금만 거둬내고 삶을 좀 비우면 어떨까. 그렇다고 삶이 아름다워지거나 사회가 밝아지진 않겠지만 내 뱃속은 편해지지 않을까. 복잡한 머릿속까지 함께 비울 수 있다면 사고가 조금 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고 하시던 박경리 선생님의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보물처럼 간직해왔던 쓰레기들을 오늘부터라도 비워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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