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 중인 분에게 경제가 갖는 의미희망편지 192호   발송일: 2021.01.19
집을 팔거나 카드 대출을 받아서 암과 투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메디컬 푸어(medical poor)라고 하는 사람들의 사례는 우리사회의 왜곡된 안전망에 씁쓸함을 불러일으킵니다. 요즘 푸어(poor)라고 하는 단어의 쓰임새가 각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급기야 ‘메디컬 푸어’라는 말까지 생겼습니다.
푸어(poor)의 몇 가지 예를 들면 하우스 푸어, 카 푸어, 웨딩 푸어, 에듀 푸어, 렌트 푸어 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무언가를 사거나 빌리면서 비용이 과도하게 지출되고 그 때문에 빚을 지게 되는데 이런 일이 한순간에 일어나다 보니 감당을 못하고 poor로 전락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남의 눈을 의식하고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만 하는 심리로,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을 하게 되니 빚을 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암으로 투병하면서 카드 빛을 질 정도로 가난해진다면 심각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값비싼 항암제 때문에, 또는 보험 적용이 되지 않고 효과도 입증 되지 않은 치료제나 건강식품 때문에 큰 돈을 무리해서 지불하는 것은 입원비가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는 것과는 다른 형태의 가난입니다. 암과 투병하면서 가난해졌다는 사례는 과도한 기대와 희망을 부추기는 사람들에게 거금을 지불했기 때문이며 또 그 사람들의 말에 호응하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암환자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라고 암환자는 답답한 속내를 드러냅니다. 암환자의 이 말은 살 수만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지, 어떤 대가도 치를 수 있다는 절박함이 들어있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특히 투병 기간이 길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 사람들까지 지쳐 갑니다. 그래서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여 사회로 복귀해서 건강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이 너무 과도하게 작용하면 나와 가족을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게 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을 통해서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 즉 사기꾼들의 수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투자를 하면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거나, 저 집이나 땅을 사면 단기간에 값이 오른다거나 아픈 사람들에게는 병을 낫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이 중에서 암환자에게 암을 낫게 해주겠다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일 것입니다. 그래서 암과 투병하는 분들은 매순간 확인하고 질문하고 고민하지만 길은 보이지 않고 절박함에 집을 팔고 카드 빛을 내어 몸을 맡깁니다. 운이 좋으면 암의 크기가 조금 줄어들어 수개월의 시간이 생긴 듯 보이지만 시간이 다 지나가면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한편 건강보험 제도에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새로운 신약을 빨리 환자들에게 적용하라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도가 바뀌고 새로운 신약이 적용되어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모든 일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FDA에서 승인된 암 치료약 36가지 중 50%인 18개가 암환자의 수명 연장에는 효과가 없었고, 17개는 환자의 삶의 질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5개만 생존을 연장한다고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신약들의 가격은 평균 연간 1억 원이 넘는데 이런 신약들이 넘쳐흐르는 것이 실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판매되는 약품을 제대로 확인하고 알아볼 수 있는 시스템이 없어서 환자와 가족들은 의심 속에서치료를 하는 수밖에는 없는 실정입니다.
암환자의 수가 늘면서 일정한 범위 안에서는 건강보험의 혜택으로 큰 부담 없이 투병을 시작할 수 있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건강보험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치료를 벗어나 개인이 선택하고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히게 됩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개인보험도 충분히 준비되어 있었다면 그나마 이것 저것 치료를 위하여 실행해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고스란히 환자와 가족이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암이라는 병은 커다란 시장이 되었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경제적 우선순위를 정해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선에서 투병을 지속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암과 투병하는 일도 힘든데 가족마저 가난의 나락으로 빠지는 일은 막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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