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차마고도”라는 다큐멘터리를 총 6부작으로 방영했었습니다. 그 중에 “순례의 길”이라는 작품은 많은 여운을 줍니다.
예로부터 신들의 땅으로 추앙을 받았던 토번왕국, 작은 마을의 세 청년이 티베트의 수도 라싸로 가는 길을 담은 작품이었습니다. 마을에서 라싸까지 무려 2,100Km. 반년이 넘는 여정인데 걷기에도 힘든 그 길을 오체투지를 하며 가는 고된 순례의 길입니다. 오체투지는 머리, 두 팔, 두 무릎을 땅에 던진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 곳 사람들은 ‘모든 중생의 고통이 내게로 오고 나의 공덕을 통해 그들이 모두 행복을 얻게 하소서’하는 마음으로 오체투지를 합니다. 고통스러울수록 죄가 정화된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TV도, 술집도, 냉장고도 없이 사는 순박한 그들은 자신의 죄가 너무 무겁다며 한걸음 나아가 온 몸을 땅에 던지면서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천년 전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모습이 그들에게 투영되어 있는 듯합니다.
죄 많고 욕심 많고 가진 것 많은 이들은 엎드려 기도하기를 더 많이 갖게 되기를, 더 좋은 집에 살게 되기를, 자기 자식은 남보다 더 잘되기를 비는데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가장 낮은 마음으로 땅에 엎드립니다. 나무로 덧대어진 양손바닥을 딱딱 마주치며 신을 향해 경배를 드리는 이 세 청년. 그리고 청년들의 먹을 것과 잠자리를 마련하는 두 노인. 병든 한 노인은 이 순례의 길에서 죽어도 얼마나 행복하냐며 버거운 수레를 끌고 갑니다.
그들의 목적지는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 있는 조캉사원입니다. 그들은 2,100Km의 거리를 오체투지를 하며 도착하였지만 조캉사원의 바코르 광장에는 그들처럼 순례의 길을 떠나온 많은 사람들이 오체투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젊은 사람, 어린 사람, 늙은 사람, 병든 사람, 가난한 사람, 지체의 높낮이도 없이 똑같이 엎드려 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삶과 죽음보다는 모든 사람의 안위와 행복이 더 중요한 사람들이며, 절 한 번할 때마다 그러한 기도합니다. 텔레비전에 나왔던 3명의 주인공은 그 후로도 3개월 동안 머물면서 십만 배의 절을 하고 나서 한 명은 집으로, 둘은 라마가 되기 위해 출가를 하였다고 합니다.
암과 투병하는 이 길고도 머나먼 길에 순례자의 마음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암환자의 고통을, 암환자 가족의 고통을 알게 되었으니 얼굴 한 번 본 적은 없으나 같은 고통을 겪는 암환자와 가족들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자신의 고통과 아픔만 쳐다보면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은 헤아리지 못하기 쉽습니다. 나보다 더 고통스럽고,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잃은 이들을 생각하며 사랑의 마음을 갖게 된다면 암 때문에 건강을 잃었지만 가족의 소중함과 건강의 가치, 인생의 의미를 더 깊이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삶과 죽음보다 깨달음이 먼저인 티베트의 그들처럼 투병의 길이 깨달음으로 가는 첫 걸음이 된다면 투병의 결과에 관계없이 지금이 결코 헛된 시간으로 남지는 않을 것입니다.